책 이야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_박민규

가면대공 2015. 10. 22. 18:02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오래전부터 읽고 싶은 책이었다. 다만 시간이 좀 지난 탓에 할인된 책을 구하려고 했지만, 광주 알라딘 중고 서점에는 할인된 책이 없었다. 아니 이상하게도, 광주에는 박민규의 '헌' 책이 귀하다. 좋은 일이다. 최근에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울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일이 생겨 크레마 카르타를 구입한 후, 언제 샀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다 읽었다. 


눈에 띄는 대사들이 있었고,


눈을 감아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눈이 머뭇거리다가 다시 돌아가고 결국은 

있어야만 했던 자리로 가야만 했던, 그런,


이야기들도 있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라고 해야 할까. 밀레니엄의 추억이 돋는 그 시절까지의 기록이었고, 눈부심 속에서 먼지처럼 흩날리다가 결국 바닥이나, 책상 위나, 창문 틀이나, 빈 의자에 떨어졌다가 재수가 없으면 걸레에 닦여야만 했던, 그런 존재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최근 김연수 작가의 20대 초반 단편집이 새로 출간되었는데, 물론 예전에 쓴 것을 다시 재판한 것이지만, 아직 읽어 보지 않았기에 조금 기대하고 있다. 최근 그가 연이어 낸 장편들은 사실 별로였다. 파도 어찌고도 그렇고, 기적의 소년 이야기도 그저 그랬다. 사실 김연수의 팬이 된 것은 그가 쓰는 단편 때문이었다. 그러니 장편에 실망할 수밖에. 하지만 한국 작가들은 부지런히, 장편을 '잘'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최근 3년간 읽은 단편들 중에서 황정음의 단편을 제외하면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 글은 없다. 그러니 나는 '더욱, 아주 많이, 그리고 부지런히' 더 많은 수의 단편들을 읽어야 한다. 그를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며 내 자신에게 반성하는 중이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글들이 더 많을 것이고, 그런 글들을 찾아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된다. 그런 와중 최근 <창비>에 수록된 양선형 작가의 글은 당돌해서 좋았다. 


다시, 죽은 왕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결국은 사랑이다. 모든 일의 열쇠는


결국 사랑이라고,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은 세상의 압력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는 사랑이 없다면 너무도 딱딱해서, 아기의 웃는 

입김에도 부러져 버릴 것이다. 언젠가는-


사랑이 결국 열쇠라고 믿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 시기에 우리는 세상에,

오직 단 둘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걸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고 마무리 하고 싶다.




2015년 10월 22일.